벨기에 박용래 태권도 사범을 아십니까?

  • 태권도조선

    입력 : 2016.03.02 11:36 | 수정 : 2016.03.02 19:29

    안재로 사범, 박용래 사범, 아내 오로라, 엄재영 사범(왼쪽부터)이 아이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한국에서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벨기에까지 가는데 무려 18시간이나 걸렸다. 벨기에의 수도 브르쉘과 작은 마을 시네에서 한국태권도를 전파하고 있는 박용래 사범을 만날 수 있었다.

    벨기에는 맥주와 감자튀김이 유명하다. 맥주마다 맛이 다르고 트라피스트라고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이 전통방식으로 만든 맥주가 있는데 맛이 좋고, 도수도 다양하다. 맛있는 감자튀김과 맥주를 앞에서 박 사범 부부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떠는데, 두 부부의 벨기에 생활을 이야기가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만났다. 박 사범의 아내 오로러는 저명한 매체의 신문기자였다. 체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태권도장에서 지금의 남편 박 사범을 만났다. 두 사람은 나라, 이념,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의 믿음으로 결혼했다.

    결혼 후 이들은 아이를 갖게 되는데 한국 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권유받았다. 자연분만을 원했던 오로러는 벨기에에서 아이를 자연 분만하고 싶어 했다. 부부는 함께 결심하고 한국에서 이룬 모든 것을 버리고 벨기에로 향했다.

    벨기에 생활은 혹독했다. 박 사범이 태권도 클럽을 개설했지만 태권도를 잘 알지 못하는 벨기에에서 수련생 모집이 힘들었다. 한국에서처럼 새벽부터 무작정 전단지를 돌리며 발품을 팔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범칙금 통지서였다.

    박 사범이 부인과 함께 태권도를 지도하고 있다. 부인 오로러 사범이 아이를 등에 업고 수련을 돕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박 사범은 학교 앞에서 시범을 보이기로 마음먹었다. 격파 시범을 계획했는데 송판을 잡아줄 사람이 없어 임신한 몸의 아내 오로러가 그 역할을 해야만 했다.  강도가 높은 벨기에 나무로 만든 판의 격파가 쉽지 않았다. 또 격파물을 잡아주는 오로라도 서툴렀다. 오로러는 자주 손등을 걷어차여서 다치기 일쑤였고, 강한 벨기에 나무판을 격파하는 박 사범의 발등은 항상 퉁퉁 부어 있었다.

    고생 끝에 첫 제자가 입관을 했다. 회계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아리손은 시범을 보고 들어왔다고 했다. 공식적인 첫 제자를 받은 박 사범은 말도 통하지 않는 수련생과 둘이 넓은 수련장에서 목이 터져라 기합을 넣으며 열과 성을 다해서 가르쳤다.

    그러는 와중에 아내가 3일간의 진통 끝에 자연분만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의 딸 일루안이 태어났다. 

    엄재영 사범, 박용래 사범, 아리손(왼쪽부터).

    그런데 또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박 사범이 6개월간 무직자로 지내게 되자 벨기에 정부가 추방명령을 내린 것이다. 실업 수당을 지급하는 벨기에 정부가 이들 부부를 위장 결혼으로 판단한 것이다.  

    한국에서의 좋은 직업과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자연분만을 위해 벨기에 행을 택한 박 사범은 눈앞이 캄캄했다. 오로러는 이 소식을 듣고 울기만 했다.
     
    시련은 태어난 아이 이루안으로 쉽게 해결됐다. 벨기에 정부가 ‘당신들 사이에 아이가 있으니 벨기에에서 살 수 있다’며 위장결혼으로 판단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리고 자녀수당과 생활비를 지원받게 됐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태권도장의 수련생들도 조금씩 늘어갔고, 생활도 조금씩 나아졌다. 

    벨기에에 태권도를 뿌리내리고 싶다고 말하는 박사범의 눈빛은 강렬하다. 그 눈빛에 태권도에 대한 열정이 숨어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오로지 가족과 태권도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 박용래 사범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박 사범의 정착기를 듣다보니 어느덧 새벽이 찾아왔다. 유난히 낮은 것 같은 벨기에의 새벽 별빛이 박 사범의 미래처럼 밝다. 

    대망태권도장 엄재영 관장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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