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 태권도 꽃 피운 그랜드마스터 권영달

  • 태권도조선

    입력 : 2017.07.29 11:13

    거리 총격, 경찰 몰살 등 내전에 굴하지 않은 집념
    “태권도가 네팔의 국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자들이 권영달 사범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꽃을 전하고 있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나라로 불리는 네팔. 인구 290만, 1인당 GDP 166위의 저개발국인 이곳에 한국의 고유 무도 태권도가 넓게 퍼져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신의 젊음을 바쳐 현지에서 20여 년간 태권도를 지도한 권영달(47) 사범이 우뚝 서 있다.

    그가 처음 네팔에 발을 디딘 것은 1998년이었다. 스물일곱 나이에 KOICA(한국국제협력단) 단원으로 파견돼 한시적으로 네팔 경찰을 지도하고 2000년 돌아왔다. 그런데 그해 10월 그는 다시 네팔 행 비행기에 올랐다. 정부파견사범에 자원했고, 네팔과의 긴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네팔의 여건은 좋지 못했다. 산악 지형의 도로가 대부분 위험했고,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무엇보다 식수 때문에 다수 국민들이 힘들어했는데, 상하수도 시설이 없어 물로 인한 질병이 끊이지 않았다. 악조건이었다.

    그나마 현지인들과의 관계는 좋아 다행이었다. 권 사범은 처음부터 왠지 네팔 국민들과 이질감이 없었다고 한다. 넘치는 인정과 우리와 비슷한 그들의 문화 덕분에 마음만은 편안하게 지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부파견사범으로 다시 찾은 그곳에서 그는 핵심 경찰 간부를 양성, 배출하는 내셔널폴리스아카데미(경찰대학) 태권도 지도자로 부임했다. 유도, 가라테를 비롯해 이미 수련하는 무술이 많았던 터라 태권도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거리 총격전, 경찰 몰살 등 내전 속에도 빛난 태권도
    올림픽 진출, 아시안게임 입상 등으로 국민들 희망

    그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96년부터 2006년까지 이어진 오랜 내전이었다. 처음에는 곧 종식될 것이라고 여겼던 전쟁은 점점 더 악화돼 갔다. 거리에서 총격전이 빈번했고, 급기야 경찰총수가 수도 카투만두(kathmandu)에서 암살당했다. 수많은 경찰 제자들이 반군들에게 잡혀 목숨을 잃었다. 권 사범을 비롯한 국민들이 한 달 이상 집밖에 못나갔다니 얼마나 위험했는지 짐작된다.

    그런 여건에서도 태권도는 빛을 발했다. 권 사범의 제자들이 국제대회에서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며 국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2004년에는 서남아시아 최초로 태권도 종목에서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았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 3개를 비롯해 지속적으로 국제대회 입상이 이어졌다.  

    내전으로 우울했던 국민들에게 태권도는 희망이었다. 반군과 정부의 싸움으로 분열된 민심이 태권도 경기를 응원하면서 하나로 뭉쳐졌다. 그럴수록 권 사범은 더욱 더 태권도 지도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좀처럼 오지 않을 것 같은 휴전이 이뤄졌다.

    네팔에서 열린 국기원컵 대회 직전, 권영달 사범이 선사할 심판들을 교육하고 있다.

    권 사범의 이러한 노력 때문일까? 지금 네팔에서 태권도를 모르는 이들은 없다. 과거 엘리트 선수 위주였던 태권도가 지금은 생활체육, 학교 체육, 방과 후 수업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대부분의 초·중·고교에서 태권도를 선택과목으로 채택했다.

    최근에는 지역마다 태권도 체육관을 크게 짓고 있다. 태권도만 전용 할 수 있는 시설이 포카라와 이따하리에 건설 중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태권도단체, 태권도인의 후원금과 정부지원으로 태권도아카데미도 만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은 권 사범은 끊임없이 현지 태권도 발전에 전념한다. 국내에서는 매년 3~4회의 전국 대회를 개최해 선수 및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2개의 국제대회를 창설해 네팔 태권도를 해외에 알리는 일을 병행한다.

    태권도가 확대되면서 네팔 태권도인들의 해외 취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권 사범이 태권도 네트워크를 활용해 제자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돕고, 정부도 지원 정책을 늘리고 있다.  

    “태권도가 네팔의 국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한 젊은 사범의 20년 노력으로 네팔을 움직였다. 아픈 마음을 달래줬고, 자긍심도 고취시켰다. 태권도의 위대한 가치를 각인시켰고, 더불어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열악한 환경과 오랜 전쟁 속에도 포기하지 않은 권영달 사범에게 박수를 보낸다. 

    신병주 태권도조선 기자[tk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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