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브루나이 유일 한인 태권도 사범 김병희

  • 태권도조선 신병주 기자

    입력 : 2018.03.27 16:26

    홀로 17년 동안 묵묵히 현지 태권도 전파에 힘써
    ‘선수 이외에 일반인들에게도 태권도 보급하고파’

    제자들과 함께 수련하는 김병희 사범(왼쪽).

    젊은 여자 선수가 브루나이라는 작은 나라에 태권도를 전파하겠다며 홀로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26세 춘천시청 선수였던 김병희(43, 브루나이 대표팀 감독) 사범 이야기다. 2001년 1월 고향을 떠난 그는 지금까지 17년 동안 브루나이에서 태권도를 지도하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공항에 도착해 게이트를 빠져나올 때 가장 먼저 그를 맞아준 것은 40도를 넘기는 뜨거운 기온이었다. 습하고 더운 공기만 그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 건 아니었다. 정글을 연상시키는 주변 환경과 정돈되지 않은 거리,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광경이 어려운 현실로 비쳐졌다. 그렇게 김 사범의 브루나이 생활이 시작됐다.

    남아시아 보르네오 섬 북서쪽 해안에 위치한 브루나이는 인구 400만에 영토가 제주도 1/3 크기로 1888년 영국 보호령이 된 후 순차적 과정을 거쳐 1984년 완벽하게 독립한 나라다.
      
    은광여고, 용인대, 춘천시청을 거치며 선수 생활을 했던 김 사범은 이규석 아시아태권도연맹 회장(당시 사무총장)의 추천과 소속 팀 (현 춘천시청 박계희 감독) 감독의 조언으로 브루나이행을 결정했다. 

    김병희 사범이 브루나이협회 임원이 된 제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2001년 부임한 그는 여자 대표팀, 청소년 대표 팀을 지도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당시 브루나이에는 이병희 사범이 미리 남자 대표팀 감독으로 진출해 있었다. 선수가 많지 않고 지도 환경도 낙후됐지만 김 사범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틈틈이 태권도 홍보에도 신경을 썼다.

    “현지인들이 태권도복 입은 제자들을 가리키며 가라테라고 부르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꼭 태권도를 대중에게도 보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어 습득과 환경 적응은 이미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김 사범은 부임하자마자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말레이어, 영어에 아랍어까지 공부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런데 현지 태권도 보급 상황, 브루나이협회와의 갈등을 비롯해 예상하지 못한 걸림돌들이 많았다.

    특히 협회와의 갈등이 한국 사범들을 가장 힘들게 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선배가 한국으로 복귀하면서 김 사범은 부임 3개월 만에 브루나이에 홀로 남게 됐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계약 기간만 견디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김 사범은 다시 의지를 다졌다.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대표선수들이 마음에 걸렸고, 무엇보다 도망친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협회의 비협조에도 김 사범은 브루나이 정부 기관과 협력해 지도자로 역할에 충실했고, 국제대회에 선수들을 진출시켜나갔다. 그리고 동남아시안게임을 비롯한 국제오픈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면서 태권도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아직 선수층이 얇아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등에서는 메달을 따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유소년, 청소년들에게 더 많이 태권도를 보급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먼 이국땅에서 태권도 지도로 긴 시간을 보낸 김 사범의 가장 큰 재산은 사회 각계에 진출한 제자들이다. 형편이 어려운 선수에게는 자신의 주머니까지 털어주고 때로는 언니, 누나처럼 감싸주면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은 뼛속 깊이 그에 대한 존경심을 새겨놓았다.

    “학교팀, 클럽도 많이 늘어났고, 1년에 1회 열리던 전국대회가 10개로 늘어났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브루나이에서는 가라테보다 태권도가 더 유명하고 인정받는 무술이 됐습니다. 브루나이 모든 국민들이 태권도를 알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남은 목표입니다.”

    김 사범은 현재 세계태권도연맹 심판(겨루기, 품새), 아시아태권도연맹 기술위원, 브루나이태권도협회 기술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브루나이 대표팀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아시아 남쪽 작은 나라에서 묵묵히 태권도를 지도하며 보낸 김병희 사범의 17년 삶이 앞으로 현지에서 더 많은 꽃을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사 목록 맨 위로